중심을 잡는 방법
항상 본질은 통(通)하고 극(極)에 달하면 하나에 수렴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잘하고 싶다면 '일'로써 성공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될 것이다. 개발자로서 성공하기 위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도(正道)를 걸었던 직장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정도를 엿볼 수 있다면 다양한 선택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2022년도에 삼성전자 고문으로 있으면서 길을 찾는 후배들에게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열정으로 포장되는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일'에 임해야하는지, 성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등의 현실적인 조언이다. 또한 직장인으로서 먼저 걸었던 길을 후배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이런 조언들을 엮어 '일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자기계발을 따로 해야한다는 착각"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내가 잘하고 있구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족한 부분 투성이였다. 특히 나의 정곡을 찌른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일과 자기계발을 분리하려는 의문을 가진다는 점이다.
"일을 잘하는것이 곧 자기계발이다" (p. 47)
나도, 내 직장동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일과 자기계발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했고,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회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신기술에 대해 항상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일이 가끔씩 자기계발에 방해된다고 느꼈고 이직을 하려면 좀 더 자기계발에 투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백히 자기계발은 회사일로부터 이루어져야한다. 내 영역과 분야가 아닌 일도 경험하며 내공을 쌓는 것이 자기계발이다. '일'에 전적으로 집중하여 '일'을 잘해야만 해당 직업에 맞는 인재가 되는 것이다. 추가적인 공부는 일을 완벽히 마친 뒤 해야 한다.
나는 내가 겸손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분명 업무나 그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 그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아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마음 저변에 자리잡았었다. 이직을 준비하며 여러 면접에서 자신감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본조차 부족했다고 느꼈다.
"시간 관리부터"
나도 투두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고, 저자도 시간 관리에 대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규칙적인, 그리고 계획적인 삶을 살았다. 입사 때 목표가 사장이었으니 거시적인 목표도 완벽하게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시간 관리부터" (p. 47)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25시간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는 사람에게는 23시간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남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발판이다.
투두 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루를 평가한다. 몇달동안은 성적표가 초라할지 모르지만 항상 하루, 한달, 일년을 평가하고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 가계부를 쓰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처럼 투두 리스트로 불필요한 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나는, 당신은 몇시간을 살고 있는가.
연차에 따른 능력 (RCB)
투두 리스트에 단기적인 일단위 과업도 들어갈 수 있지만 인생의 계획도 들어갈 수 있다. (나도 개략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RCB 로 표현한다. RCB 는 회사생활이라는 마라톤에서 취해야 할 전략이다.
R 은 Reset 으로 사회 초년에는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입사 전의 스펙이나 능력은 중요하지 않고 입사 후에 직장인으로서의 새로운 세팅이 필요하다. C 는 change 이다. 연차에 따라 필요한 능력이 바뀌는데 20대는 성실함, 30대 중반 이후는 직무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이에 맞춰서 적절히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B 는 be brave 이다. 40대 중반부터는 담대함을 가지고 뜻한 바를 밀고 나가 직장인으로 자기 모습을 완성시켜야 한다. 결과를 차분히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조직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약팽소선(若烹小鮮)
- 큰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 삶듯이 해야한다는 의미로, 어떤 정책을 세우면 일단 가만히 두고 지켜보며 차분히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 질문하는 법
연차에 따른 능력이란게 당연히 저절로 얻어질 수 없다. 특히 연차가 쌓일 수록 필요한 지식과 지혜는 스스로 배울 수 없다. 필연적으로 선배에게 질문을 하며 배워야 한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질문"하는 방법이 종종 논제로 올라온다.
"이런 것도 찾아보지 않고 질문을 해?" vs "모르는 걸 질문도 안하고 고생하네?"
여기에 대해 정답은 없지만, 분명한 건 내가 마주쳤던 문제는 분명 선배들 중 한명 이상은 마주쳤을 거라는 것이다.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 핵심을 파악하고, 바르고 빠른 질문을 토대로 일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것이 '질문을 통해 일을 잘하는 방법'이다." (p. 139)
질문은 일의 진척을 확인하고 방향을 잡기 위해서 해야 한다. 선배는 질문을 듣고 업무의 병목 구간을 해소해주면서 일의 진척도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질문은 깊이 있게 정확한 핵심을 찔러서 질문해야 한다. 구사일언(九思一言)이라고 한다. 아홉 번 생각하고 말하라는 뜻이다.
"박이정(博而精)" - 넓게 그리고 깊게 알기
질문을 잘 하기뿐만 아니라 능력을 키우려면 넓게도 알고 특정 분야에 깊게도 알아야 한다. 이를 '박이정'이라고 한다. 이런 박이정을 품으려면 선후배가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내공으로 쌓아야 한다.
포괄적으로 일을 받아들인 후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깊게 파고 들 수 있어야 한다. (p. 122)
스터디로 읽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101 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개발자에게는 기술의 깊이가 중요하지만 아키텍트에게는 깊이보다 폭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스터디원들과 얘기를 나눈 건, 특정 기술을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영역"에서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영역"으로 어떻게 보내냐이다. 우리는 동료와의 얘기나 스터디를 통해서 이를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영역"으로 보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선후배가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는' 행동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나보다 뛰어난 나를 따라잡아라 - 가상의 나와 비교하기
'회사'가 아닌 '내'가 주도권을 갖는 세 가지 방법 (p.216)
저자는 '나를 내보내면 회사가 아쉽도록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항상 '가상의 나'와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의지를 잡곤 하는데 주로 지금 상황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린 나'를 가정한다. 예를 들어서,
'처음부터 개발자를 진로를 선택해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있는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분명 나라면 놀고 있지 않을 텐데 '또 다른 나'보다 1.5배는 더 공부해야 따라잡지 않을까?
'또 다른 나'를 따라잡는 건 매우 힘들다. 내가 노력하는 것만큼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노력하는 것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말이 이상하지만, 그만큼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 한다는 말이다.
상대적 박탈감 - "마음의 코어를 키워라"
이 책을 읽은 주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직을 준비하면서 여러 취업 커뮤니티를 돌아다녔는데, 솔직히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 나와 비슷한 나이와 연차임에도 더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를 받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일"에 관한 정보를 커뮤니티가 아닌 책에서 얻고 싶었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 절치부심(切齒腐心), 마부작침(磨斧作針)" 사자 성어 세 개가 마음에 자칫 깃들 수도 있었을 상대적 박탈감을 막아주었다. (p. 267)
상태적 박탈감은 마음의 동요이기 때문에 막기가 힘들다. 하지만 종교 신자가 힘들 때 신을 찾는 것처럼 나도 무력감이 들 때 항상 되뇌이는 말이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엘런 케이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해줬던 말이다. 그 친구와 데면데면해 연락은 하지 않지만 참 고마운 친구다. 내 중심을 잡아줄 글귀를 남겨줬으니 말이다. 글귀 그대로, 내가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으며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끼어들 데가 없다.
마무리
저자는 삼성전자 평사원부터 시작해서 사장까지 오른 인물로 전 직급을 망라한 조언들이 곳곳에 있다.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지금 읽는 느낌과 연차가 쌓인 후 읽는 느낌이 분명 다를 것이다. 몇년 후 분명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막힐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다시금 이 책을 집어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