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추천해서 읽어본 책.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결론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는 얕았다. 아니,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성에 기반한 사랑에 대해 실재적으로 기술하면서 내 생각을 바꿔준다.
사랑의 이론
사랑의 기술은 '사랑받는' 기술이 아닌 '사랑하는' 방법의 기술이다.
첫 챕터에서 사랑에 대한 오해 세 가지부터 나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았다. 특히 첫 번째, 두 번째 항목은 항상 내가 생각하던 오해였다.
-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랑받는' 방법으로 생각한다.
-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같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왜 시작하게 되는가?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가지면서 동시에 분리감을 느낀다. 사회, 집단, 더 작게는 남, 가족으로부터 분리감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벗어나려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합일 형태를 추구하는데 사회 권위에 복종을 하거나 마약, 도박 등에 중독되기도 한다. 무언가 만들고 생산하는 창조적 합일도 있지만 이 또한 일시적이다.
이러한 여러 합일 형태 중 대인간적 융합에 대한 욕망에서 합일의 완전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비슷하게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양성 간의 성적 매력은 이성의 극과 합일하려는 욕구다.
(분리에 대한 공포는 어느정도 공감되는 부분이다. 나도 집단 혹은 다수에 속하려고 하며 집단에 속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발전하면서 발생한 근본적인 공포일까? 아니면 사고하는 능력이 가져온 불안일까? 어찌되었든 분리에 대한 불안은 존재하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을 대인간적 융합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 후 안정감이 이러한 불안의 해소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숙한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생산적인 성격에게 '준다'라는 것은 나의 힘, 부, 능력을 경험케 해주는 행위다. (물론 사랑이 권위의 전이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주는 게 즐거워 진다.
어린아이의 사랑의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순수한 사랑은 생산성의 표현이고 보호, 존경, 책임, 지식을 의미한다. 순수한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의미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며, 이 갈망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근원이 있다.
사랑의 대상
**사랑은 특정한 사람,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에 의해서 성립한다고 믿고 있다.
(이 문구는 꽤나 나에게 와닿는 말이다. 일, 취미 심지어 사람(동료 등)에게까지 내가 갖는 관심은 내가 느끼기에도 일정한 주기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 많은 것에 대해 쉽게 흥미를 갖고 쉽게 잃는다. 또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갖는 사랑도 일정한 주기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랑했던 사람들은 공통점이 적었지만 헤어지게 된 이유는 모두 비슷했다. 나는 둘 사이의 문제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성격의 방향이 그러했기 때문에 '관심' 또는 '사랑'이라는 부분이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되고 끝맺음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어느정도 무관심해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태도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게 확실히 맞는 말이다.)
성애
성애는 완전한 융합, 곧 다른 한 사람과 결합하고자 하는 갈망이다. 하짐나 성애와 사랑에 '빠진다'는 폭발적인 경험은 엄연히 다르다.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마음 속에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하지만 성적 욕망이 사랑에 의해 자극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합일은 도취적이며 일시적인 합일일 뿐이다.
성애에는 소유적 애착으로 오해되는 독점욕이 존재한다. 사랑을 통해 둘을 하나로 봄으로써 분리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둘은 여전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성애가 사랑이 되기 위한 조건은, 나는 나의 존재의 본질로부터 사랑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그녀의 존재의 본질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한 부분이고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에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든 차이가 없어진다.
사랑은 감정의 충돌이 아닌 본질적으로 의지의 행위이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따라서 결혼이 성립되면 의지의 행위가 사랑의 계속을 보증한다.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은 상품으로 변하면서 분리 상태가 되어버리고 불확실성, 불안의 지배를 받는다. 사회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을 규격화하고 오락산업을 제공한다. 현대인은 교환과 소비에 익숙하고 이는 물질적 대상뿐만 아니라 감정에도 해당된다. 따라서 사랑을 얻기 위한 행위들(아내/남편으로서 역할, 성적 행위) 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상호 성적 만족인 사랑과 '팀워크'로서 고득으로부터의 피난처인 사랑은 현대 사회 사랑의 병리학의 두 가지 '표준적' 형태다. 예를 들어 신경증적 사랑의 기본 조건은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모두 어버이 상에 애착을 느끼고 어른이면서도 일찍이 어버이에게 느꼈던 감정, 기대, 공포를 애인에게 전이한다는 사실이다. (남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여자에 대한 관계는 표면적이고 무책임하다. 그들의 목적은 사랑받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천
특정 기술에 관계없이 기술에는 훈련이 필요하고, 이 훈련에는 집중이 요구된다.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경청한다는 뜻이다. 정신 집중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해 실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민감'하지 못하면 정신집중도 배우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조바심, 피곤, 우울 등)에 귀를 기울이고 건강한 기능상(機能像)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아도취 극복
사랑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성질은 '자아도취'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아도취의 반대는 '객관성'인데 이것은 사람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은 자신 내면의 현실만이 유일한 현실이며, 외부 세계를 단지 내면 세계의 상징, 창조물로 본다. 따라서 객관적 견해를 갖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세계에 대한 왜곡적 견해를 갖는다. 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을 자기중심적으로 만든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이성이다. 그리고 이성의 배후에 있는 태도는 겸손이다. 즉, 사랑의 기술의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사랑은 자아도취의 상대적 결여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신앙
또한 사랑의 기술은 신앙을 요구한다. 신앙이란 다른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신앙을 가지려면 '용기' 즉 위험을 무릅쓰는 능력, 고통과 실망조차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과 용기도 연습이 필요하다.
활동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는 데 "활동"은 불가결한 태도이다. "활동"이란 내면적 활동, 곧 자신의 힘의 생산적 이용을 나타낸다. 사랑은 활동이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내면적 게으름을 피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자신의 눈과 귀로 느끼고 사고하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데 불가결한 조건이다.
마무리
사랑은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즉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 사회의 '교환과 소비'에 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회는 인간의 사회적이고 사랑할 줄 아는 본성과 일체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짧은 의견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 학파의 여러 관점을 비판하고 있는데 특히 사랑이 성적 본능의 결과라는 점을 비판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전제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점과 "인간은 분리를 공포로 느끼고 있으며 해소하려한다"는 점인데 인간이 과연 이성적이기만 존재인가? 는 최근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그 전제를 바탕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기술(자아도취 극복, 믿음, 활동) 등을 전개하는 논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으며 실천 부분은 마음 깊숙히 넣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